기록은 역사를 바로 세운다(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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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역사를 바로 세운다 / 지율

- 지율

 

좋은 질문

오래전 깊은 산중에 계신 노스님을 뵈러가서 여쭈었습니다.

- 스님,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 좋은 질문에 좋은 답이지

  •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가요?
  • 임제스님이 황벽스님을 찾아가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한 것이 좋은 질문이지

사실 그때는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고 한 그 질문이 왜 좋은 질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공부 길을 버리고 산막에서 내려와 뜻하지 않게 7년이라는 시간을 무너져 가는 강변을 서성이며 저는 좋은 질문을 찾기 노력했습니다.

 

4대강이 뭐예요?

대학 1,2학년생들에게 4대강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은 ‘4대강이 뭐예요?’ 하고 묻는다고 합니다. 4대강이 시작 된 것은 이 친구들의 초중생 시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질문을 가지는 것은 단지 시사에 어두워서만은 아닌 것입니다.

지난 8월 초, 4박 5일 동안 자전거로 낙동강을 내려가며 자전거 길에서 만난 젊은이들에게 가장 많이들은 말 중의 하나 역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젊은이들이 본 강은 처음부터 ‘깊고 검고 탁하고 때로는 녹조가 잔뜩 낀 물이 가득 넘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가져야 하며, 강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강은 ‘우리’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의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요?

7년 동안 강가를 서성였던 것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겨우 제가 해야 할 일은 질문이 아니라 ‘역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울어 가는 이 땅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작은 가새목이라는 것을 ...

(가새목은 보잘 것 없는 판때기나 작대기를 그냥 생긴 대로 못 한 방이면 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새목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동량을 너끈하게 잡아 준다. 이유는 방향이다. 동량은 수평과 수직의 세계이다. 튼튼한 듯 보여도 동일한 방향끼리 물고 물려서는 흔들리고 불안하다. 엇방향과 얽히고 설켜야 굳건하게 서고 흔들리지 않는다. / 박영관 교육우분투 중)

 

물길을 걷다

4대강 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2-3년은 자벌레처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공사를 입안하고 지시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헬기를 타고 제 머리 위를 날아다녔습니다. 저는 늘 ‘그분들이 보는 강과 제가 보고있는 강은 어떻게 다를까?’ 하고 궁금해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들이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2차원의 지도를 가지고 강의 변화를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천대강변   noname01

해평습지      noname03 

 

사진을 보면 강에서 모래가 사라지고 모래가 사라진 자리엔 푸른 물이 가득합니다. 길에서 만난 젊은이들 말처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쉽게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2차원의 평면을 3차원으로 옮겨놓는 통상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XY축에서 Z축인 높이를 추가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Z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Z축을 높이와 깊이로 나누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높이의 개념은 보를 세워 강의 수면이 높아진 것을, 깊이는 강의 모래를 준설해서 강바닥이 깊어진 것을 이야기한다고 전제하고 이야기 진행을 하려 합니다.

 

Z축의 높이

강의 높아질 때 일어나는 변화 중 가장 큰 문제는 농경지와 강변둔치의 침수 지역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농경지의 침수는 직접적으로 농민들이 입게 되는 피해지만, 또 다른 피해는 보 상류의 나무들이 고사하며 수질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낙동강 합수부에서 8km 상류의 팔등교 상류까지 위천은 역류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물이 가득한 본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 합수지점 가까이에 가면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코를 막지 않고는 있기 힘든 상황이 됩니다.

 

지천의 역류

그러나 제가 높이에 주의 깊게 관찰하는 곳은 지천이 역류하는 곳입니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지천과 소하천의 3분의 2이상이 역류하고 있으며, 위천과 남강의 경우에는 9km 이상, 회천과 금호강은 5km 이상 본류의 물이 역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질을 악화시키는 가장 큰 주범이 역류라는 사실은 그동안 크게 주목되지 못했습니다. 지천이 역류하면 강이 시궁창이 되어버리는데도 말입니다. 역류가 왜 문제가 되는지는 현장에 가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영상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천 하류의 낙단보의 관리수위는 40m입니다. 이 수치를 대입하면 위천은 9 km 이상 역류하게 됩니다.  

결국 지천에서 내려오는 물은 본류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썩어있는 상황입니다.

 

 

BOD (ppm)

2011/2015 (6)

COD(ppm)

2011 / 2015 (6)

내성천수계

성저교

0.9 /1.6

3.7/4.3

낙동강본류

지인교

1.0 /1.0

4.9/4.5

영강

말응리

1.0 /1.5

4.9/6.1

낙동강본류

상풍교

0.9 /2.4

4.5 / 5.2

병성천

병성교

1.4 /4.3

5.6/ 8.1

위천

우물교

1.5 /3.2

5.8 / 8.6

환경부 수질데이터 비교자료

 

Z축의 깊이

 

Z축의 다른 한 면인 깊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려 볼까합니다.4대강 사업은 강바닥에서 모래를 깊이 판 사업입니다. 본류의 강바닥이 1m 깊어질 때 지천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최근 환경단체에서 강이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감천의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4대강 공사 이전 감천 하구는 29-28m 정도의 고도가 유지되던 곳이었지만 칠곡보 관리수위 26.60m와 구미보 하상의 높이 21.50m를 맞추기 위해 4m 이상 준설을 했던 곳입니다. 수원공사에서 2012년 감천하구에 4m 정도 되는 보를 세웠지만 그러나 2012년 여름 한철을 견디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강바닥이 낮아질 때

 

강바닥이 낮아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내성천의 경우를 들어 보겠습니다. 영주댐으로 모래가 내려오지 않자 강이 깊어지면서 비단을 깔아 놓은 것 같던 모래강변은 불과 두 해만에 풀밭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풀이 나고 강변이 거칠어지는 것, 제방이 무너지고 교각이 무너지는 것 등은 강의 시스템이 변하고 있는 하나의 징조에 불과합니다.

기실 저는 이 문제를 쟁점으로 영주댐 철거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의 변화는 돌이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래 사진은 내성천을 찾았던 사람들이 한번쯤 걸어 내려갔던 신음천 강변의 변화사진입니다.  

강의 본류가 깊어지면 지천이 깊어지고 지천이 깊어지면 소하천들이 영향을 받게 되고 소하천이 영향을 받으면서 결국은 지하수 체계가 크게 변하게 됩니다. 논물은 짜여 들어가되고 밭은 마르게 됩니다. 대지에 뿌리를 내린 모든 식물들은 물론 샘과 하천에서 목을 축이던 모든 동물들의 생육에 문제가 생깁니다.

 

올해는 뚝방을 날아다니던 잠자리와 나비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가뭄과 하상변화로 지하수가 말라버렸기 때문에 나비와 잠자리 유충들이 말라죽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주의해서 보면 지표면의 식생들도 건조한 지역에서 자생하는 종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으며 물을 많이 머금는 버드나무들은 고사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이 모든 변화는 강을 평면으로 보았기에 진행 된 시행착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강은 평면이 아니라 공간이며, 단절 된 구간이 아니라 연결 된 시스템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4대강 공사로 인해 우리가 잃게 된 것이 무엇이며 다급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낙동강에서 내성천으로 올라 온 것은 2011년 4월 이었고 내성천 하구에 두 개의 보 계획이 추진되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내성천은 낙동강에 있어 1급수의 맑은 물과 모래를 공급하는 하천으로 낙동강의 수질과 깊어진 하상을 안정화 시킬 수 있는, 마지막 출구입니다.

지금 내성천의 친구들은 변호사도 없이 영주댐 철거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조 이상 투자 된 국책사업을 완공을 앞에 둔 시점에서 진행하는 철거소송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일어나서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은 영주댐 철거소송이 아니라 국토의 혈맥을 파헤친 4대강사업입니다. 우리는 이 사업의 증인이며 목격자로서 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3차례 정도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기에 다음 토론회에서는 영주댐 의 대안에 대하여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법정에서 환경을 보호하다: 리나 콜레이라트(Lina Koleilat)

 

 

법정에서 환경을 보호하다: 지율 스님의 법적 여정

Defending the Environment in Courts: Bhiksuni Jiyul’s Journey with the Law

리나 콜레이라트(Lina Koleilat)

 

2004년 이후 지율 스님은 개발 계획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보호하기 위해 법적으로 대응해오고 있다. 스님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법적 소송은 한국 사법 사상 최초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에 의해 제기된 집단 소송사건이었는데 고소인은 바로 꼬리치레 도롱뇽이었다. 그녀가 제기한 법적 소송 중 어떤 것들은 명예훼손에 대해 언론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어떤 것들은 정치인이나 헌법재판관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었다. 가장 최근의 소송은 대한민국과 삼성물산과 한국수자원공사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지율 스님은 2004년의 첫 소송만 예외로 그 동안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으로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해 왔다.

 

불교적 저항 형태

지율스님의 투쟁에서 놀라운 점은 현 국가 체제에 대해 변방에서 저항하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법정이라는 국가 그 자체를 이용해서 국가체제 안에서 정의를 실현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지율스님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이다. 왜 스님은 계속 법을 이용해 저항하는 것일까? 스님의 투쟁은 그 동안 얼마나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본 논문에서 필자는 법정 소송 그 자체를 넘어 법정을 이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장기적 가치, 즉 사회적 활동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들인 데모, 단식, 절, 피켓 시위 등으로 얻어 지는 것이 아닌 다른 가치에 대해 논의하려 한다. 지율스님이 사용하는 접근 방법의 주요한 점은 첫째, 대화의 상대방을 참여시키는 것, 둘째, 환경 파괴에 대한 저항을 기록화하고 환경 활동가들이 장래 활용할 수 있을 법적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지율스님의 법정 투쟁의 가치는 소송을 “이기거나” “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님이 이용하는 과정과 그 접근 방법의 광범위한 영향에 있다는 것을 논의할 것이다.

 

법적 투쟁 외에도, 단식과 절 또한 지율 스님이 환경 문제에 대한 일반의 의식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항의와 저항의 수단이다. 2003년, 스님은 부산 시청 앞 도로에서 43일 동안 매일 3,000배를 했다. 스님은 이것이 가장 힘든 항의 수단이었다고 말하는데, 그때가 여름으로 아침 7시에 시작해서 밤 9시에야 절이 끝났다고 한다. 스님은 또한 서울에서 시작해 부산까지 3보1배를 하기도 했는데 불교 수행법인 3보1배는 한국의 종교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저항의 형태이다.

 

스님은 단식투쟁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말한다. “단식 중에 더 많은 좋은 에너지를 더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 단식은 38일 동안 지속되었고 두 번째 단식은 58일, 세 번째 단식은 100일 동안이나 이어졌는데 마침내 병원으로 옮겨졌고 거의 돌아가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가 2006년 2월이었다. “청와대 앞에서 58일 동안 단식하는 동안 사람들이 와서 저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론이 나빠지자 정부는 공동조사를 시행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지율 스님은 항의와 단식을 통해 환경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키지만 사회적 항의 방법으로 단식이 효과적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매일매일의 단식기간 동안 건강이 악화되면서 환경문제가 얼마나 시급한 것인지 – 얼마나 생명에 위협적인 것인지를 – 매일 달라지는 몸의 상태로 직접 보여줄 수 있었다고 한다.

 

상호연관성 개념

 

조은수 교수는 지율스님의 철학은 모든 존재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한 부분이 무너지면 다른 모든 부분들도 무너진다는 불교의 화엄사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교수는 이 개념은 자연과 삶 그 자체의 모든 부분들을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인터뷰에서 지율 스님은 자신의 역할을 아이콘 – 강과 강을 둘러싼 다양한 생태계의 아이콘으로 의식한다고 설명한다. 스님은 4대 요소인 흙, 물, 불, 바람들을 설명하고 우리 존재가 어떻게 이 요소들에 의존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우리가 지구와 또 우리 주위의 자연과 상호연관 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이들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구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체들의 에너지를 통해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 꼬리치레 도롱뇽이 아주 작은 존재라 할지라도 도롱뇽은 건강한 환경에 의존해서만 살 수 있으며 도롱뇽의 생존은 인간을 포함한 주위 모든 생명체에 영향을 미친다.

 

지율스님은 왜 자신이 환경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스님은 ‘어떤 사람들은 환경 파괴에 대해 대통령이나 건설회사를 욕하지만, 비난을 돌리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비난은 우리로 하여금 문제로부터 도망하도록 할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역할은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할 때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토대를 두고 바깥 사회, 전 세계, 지구, 그리고 4대 요소와 연결되어 있는 인간으로서의, 또한 불교 수행자로서의 의무를 다시 확인한다.

 

지율스님은 자신은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다른 사람이나 조직들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고 강조한다. 스님의 목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환경에 대해, 또 아무리 미약한 존재라 할지라도 각 생명체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바쁜 삶 속에서 우리가 이 강 – 그리고 모든 강 – 과 강물 속이나 강 주위에서 살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생명들의 중요성을 잊지 않기 위해 삶의 자연적 요소들을 상기시키려고 한다.

 

법적 목표와 방법들

 

다른 많은 활동 형태 외에도 스님은 소송을 통해 가장 놀라운 저항 효과를 만들어 갔다. 스님이 제기한 소송들 중에서 (2014년 현재 총 11개) 가장 중요한 두 개는 2003년에 시작해 2006년에 끝난 꼬리치레 도룡농 집단소송과 2014년에 시작된 영주댐 중지 및 철거 소송으로. 이 두 법정소송에서 지율스님은 두 개의 주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째는 댐 건설과 자연 파괴에 대한 공공의 항을 기록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정부와 공사에 참여한 기업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표의 상세한 내용들을 설명하기 전에 필자는 저항 형태로서의 법정 소송의 중요성을 명확히 밝히고자 한다. 꼬리치레 도룡농의 생존권 소송은 일반인들의 의식을 진작시켰다. 소송으로 인해 법적 체계의 관리 책임과 또한 우리 주위의 생명체들의 삶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사회에 대한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소송을 통해 환경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감으로써 자신의 불교적 믿음과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실천했다.

 

회색 승복을 입고 법정에 서서 도롱뇽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건설현장 주변의 모든 생명체들을 대변한 소송들을 통해 사회적 정의 체계의 정당성에 도전했다. 활동 수단으로서의 소송은 매우 놀라운데, 변방에서 체제에 저항하고 싸우는 대신, 체제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그 안에서 그 자체의 수단들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법정을 통해 스님은 공적이고 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었고 동시에 반대자들에게 그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하도록 했다. 건설회사와 정부를 법정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지율 스님은 그들을 불편한 대화로 초대한다. 스님은 법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계획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정당성을 제시하도록 하고 또한 그들의 법적 대변인들을 통해 그들이 대중과 소통하고 자신들의 위치를 명확히 하도록 만든다.

 

스님은 말 그대로 상대방을 테이블로 데려 온다. 여러 경우에서 회복 불가능한 환경 피해를 가져왔음에도 지금까지 제재 받지 않고 사업을 벌여왔던 건설사들과 정부의 “개발” 계획이 공공장소에서 자신들을 변호해야만 했다. 이들을 법정에 세우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설명과 정당화, 그리고 그들의 계획이 주변 생태계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내놓을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

 

대부분의 경우, 사업의 주체들이 자신들이 돈을 부담하고 따라서 자신들에게 가장 편리한 결과를 내놓는 환경평가를 시행한다. 그러나 소송을 통해 지율 스님은 그들이 이 결과들을 기록하도록 만든다. 이 프로젝트들이 환경에 미치는 실제적인 영향들을 기록함으로써 앞으로 이 평가결과들을 입증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해질 토대를 마련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회사 건물 앞에서 항의하는 대신에 그들이 원하지 않는 불편한 대화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법적 과정을 통해 그들은 대변인들을 보내야 하고 주장을 제시해야 한다. 이 법적 소송들은 또한 진행에 긴 시간이 걸린다; 꼬리치레 도룡농 소송은 몇 년을 끌었다. 동시에 스님은 법적 체계와 프로젝트 실무자들이 먼저 스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고 나서 자신들의 위치를 변호하도록 만들고 있다.

 

저항의 기록

저항의 형태로 법정 소송을 이용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저항과 논의를 기록하는 것이다. 모든 법정 소송들은 일단 진행되면 자세하게 기록된다. 원고의 주장, 피고의 반박, 그리고 각각 자신의 위치를 옹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논리 등이 온전히 기록된다. 이외에도, 지율스님에 의해 제기된 것과 같은 환경 문제에 대한 사법체계의 반응이 그대로 기록된다. 이런 과정들을 기록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적 시스템을 이용함으로써 스님은 사법체계의 공공의 기록속에 추적 가능한 저항의 기록을 만든다. 이런 법적 기록을 만들도록 하는 것은 많은 사회운동이 하지 못한 주요한 공헌이다. 항의나 단식, 혹은 절을 통해서는 그 효과가 제한적이다. 저항하는 행동이 끝나는 순간, 그 활동의 기록은 다른 사람들, 특히 언론이 그 행동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문제들을 법정으로 가져가면서 상황은 매우 달라진다. 지율스님의 저항의 목소리는 그녀가 제시한 그대로 정확히 법정에 접수되고 기록된다. 저항의 기록이라는 이 상징적인 행동은 역사적으로 훨씬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이는 환경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또한 정부의 시책과 사기업에 의해 야기되는 대규모의 환경 파괴에 대한 공공의 저항을 이해하는데 공헌할 것이다. 법적 과정을 통해 구축된 저항은 특정한 저항 사건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역사적 기록을 창조한다. 이것이 지율스님이 법정을 이용함으로써 만들어 가고 있는 주요한 결과이다.

창의적인 활동

 

위에서 대략 살펴본 것처럼 범법자들을 협상의 테이블로 나오도록 강제하고 저항의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지율스님은 법정 소송에서 “이기는” 것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고 있다. 판사의 결정으로서의 이기거나 지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법정 소송에서 다투게 되는 내용과 과정에 토대를 두고 있다. 법정에서, 건설회사와 정부는 자신들의 건설계획 프로젝트가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타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스님이 제기한 법적 소송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사업을 말로 표현해야 하고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법적 절차를 거치고 자신들의 주장을 변호하는 기록들을 제공해야 하는 과정을 통해 환경 평가가 사업의 결과를 올바로, 혹은 잘못 예측하건 간에, 평가 보고서는 법정에 의해 기록되고 장래 언제라도 재검토되고 재평가될 수 있다. 항의의 대상자로 하여금 사업이 미칠 영향의 타당성을 밝히도록 촉구함으로써 지율스님은 그들을 법적 시스템 앞에서 대중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했다.

 

정의의 전당인 법정을 이용하는 창의적인 저항의 새로운 모델, 즉 국가 및 이익을 추구하는 대기업 활동에 참여하고 언제 어디서나 논의를 제기할 때마다 환경문제에 대중의 주의를 끌어 모으는 저항 모델을 제시한다. . 그녀가 도발한 논의들은 적대적이 아니지만 문제를 처리하는데 법적 수단을 사용함에 있어 스님은 단순한 방어적 위치가 아닌 강력한 위치에서 행동한다. 법정으로 문제를 가지고 감으로써 스님은 그 과정을 법적으로 기록한다. 스님의 행동과 법적 소송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는 많은 문제들을 협상의 테이블로 가져온다. 우리 사법 시스템은 어떻게 움직이며 누구를 보호하는가? 소수의 사람들이 계속 환경을 파괴하는 동안 누가 보호자의 역할을 할 것인가? 누가 꼬리치레 도롱뇽농과 같은 작고 연약한 생명들의 존재를 위해 싸울 것인가? 우리를 포함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생태계의 상호연관성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유형의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주위 세상과 환경 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지율스님의 불교적 관점은 전염성이 강하다.

 

NOTES

 

Eun-su Cho, ”From Ascetic to Activist: Bhiksuni Jiyul’s Korean Buddhist Eco-Movement,” Nature, Environment, and Culture in East Asia: The Challenge of Climate Change, ed. Carmen Meinert (Leiden: Brill, 2013), 25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