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레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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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살아오면서 나는 강을 처음으로 만났다 / carpe diem

 

지율스님과 함께하는 낙동강 1박 2일 숨결느끼기 순례에 참여했다. 24년 살아오면서 나는 강을 처음으로 만났다 . 사전적인 의미에서 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나는 제방에 갖힌 강만을 보아왔다. 그런 강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굽이 굽이 곡선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자유로와 보였다. 강은 원래 곡선을 그리며 흐른다.

 

멀리서 조감해서는 강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금방이라도 발을 담글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서,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아야 한다, 지평선과 함께 흐르는 내성천을. 나는 물이 나와 평등하다고 느꼈다. 모래와 물이 경계를 흩트리며 하나가 되는 것처럼 나는 물, 모래와 일체가 되었고, 완벽한 충만함을 경험했다. 내성천을 바라보며 내 안을 들여다보고, 세계를 볼 수 있었다.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뜨겁게 끓어올랐다.

 

이건 '원시'의 감수성일까?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는 내가, '원시'의 강을 동경하는 것은 기만일까?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면서 조금씩 문명에 양보해버리듯이, 강도 어쩜 그렇게 포기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지키고 싶은 것은 지킬 수 있었으면 한다. 영웅적이진 않지만, 언제나 옳지는 않지만 공지영 씨 소설 '도가니'의 강인호처럼 주어진 작은 용기만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눈앞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난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낙동강 1박 2일 순례는 어떤 구호나 시위보다도 혁명이다

 

지율의 전선에 서다 / 찬돌    

 
여덟번째 순례길에서                                                                    

 

세밑에 부랴부랴 야학사 정리를 끝내고 지난 주말 그 동안 숙제처럼 미뤄왔던 낙동강 순례길을 나섰다. 허리가 좋지 않아 어쩔까 망설이기도 하였는데 댜행히 큰 아이가 선뜻 동행하겠다고 나서주니 힘이 된다. 이 날 마침 진보신당 사람들과 동행하게 되어 일행 일곱은 구포역에서 영주행 새벽 완행열차를 탔다. 오랜만에 스님 만날 생각에 마음이 조금 설레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상주 버스터미널에 맞으러 나온 스님은 “뭐꼬, 인제 오고.” 하시며 반가이 손을 내민다.

‘그래, 저 손을 맞잡으러 왔지.’

 

전국 각지에서 온 40여명의 사람들을 관광버스에 싣고 이제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를 할 모양이다. 잠수교인 강창교에서 내려 상주보 물막이 공사가 한창인 강뜰로 나섰다. 스님은 연신 사진기 셔터를 누르면서 하나라도 그냥 지나칠세라 일행을 재촉해가며 가늘고 높은 특유의 톤으로 안내에 여념이 없다. ‘스님, 맨날 와도 사진 찍을게 보이세요’ ‘방문객에게는 정경으로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이 곳이 전선(戰線)이어요’ (전선이라는 말을 못 알아들어 몇 번이나 되물으니 주위사람들까지 사오정 취급을 한다)

 

‘전선’이라,

 

그제서야 스님이 입고 있는 낡고 추레한 장삼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키가 훤출한 비구스님의 옷이라며 러시아 병사 외투같다고 깔깔거리신다) 스님에게는 저 옷이 전투복이며 어깨에 걸머진 카메라와 배낭에 든 캠코더와 노트북이 개인화기인 셈이다. 강뜰의 모래와 흙을 파뒤집어 반대편으로 둑길을 넓히고 경사를 다지는 모습을 학살의 현장이며 사체를 쌓아놓은 것이라 하신다. 그러니까 매일 수천, 수만의 아군이 몰살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삼강에서 사벌로 경천대로 상주보로 통곡의 소리를 전하는 것이며 내성천으로 회룡포로 하회마을로 병산과 마애로 고스란히 학살을 기다리는 스스로 그러한 저 원형의 삶들을 어찌할 것인가 묻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어느 인터뷰에서 ‘무엇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싶은가’하는 물음에, 할 수만 있다면 ‘내 눈을 빼서라도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전하고 싶다’고도 하였다) 그러니까 왜 순례길인지. 왜 답사가 아닌 순례이며 왜 ‘숨결 느끼기’인지 어렴풋이 알 듯도 하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기보다 뭔가를 느껴야 하나보다. 그곳을 통하여 보다 근원적인 또는 본질적인 어떤 것에 가닿고자 함인 모양이다. (종교란 으뜸의 가르침이라 하였던가) 그러니 그 흔한 피켓이나 깃대 하나 못들게 하면서 눈쌓인 모래사장으로, 어둠이 깔린 강둑 위로 조용히 강바람 소리를 듣고 강의 호흡을 느끼게 하려한 것인지 모른다.

 

순례 이틀째의 해뜨기 전 부용대에서 맞은 눈덮인 물도리[河回]동의 정경과 물안개 피어오르는 하회나루의 온통 새하얀 누리에 빼꼼하게 얼굴 내미는 붉은 햇살 (누군가 달력 사진이라 하였다), 눈덮인 동양화 한폭을 눈 닿는 데까지 곧추 세운 듯한 병산의 절경에 마음을 빼앗겨도 스님이 보여 주려한 그림이, 느끼기를 바랜 풍광이 그게 다였을까.

 

병산에서 이른 점심을 먹은 후 순례객들을 풍산으로 가는 버스에 싣고 다시 내려서 한 시간 가량을 걸어 들어간 마애 습지와 선사유적지의 모습에서 실마리를 붙들 수 있었다. 산과 강과 바다가 제 모습을 정하고 수백만, 수억년을 살아온 물의 역사가 단층을 이루며 켜켜이 각인된 흔적을 보란 듯이 드러내면서 그냥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그렇게 강이 만들어지고 흐르는 것임을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이다. 거기에 수십만년 전이라는 선사시대 구석기 유물을 같이 보여줌으로써 이처럼 인간이전부터 인간이 유래한 뒤까지 공간과 시간을 더불어 한 것임을 알아차리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 속에 아직도 원형을 지닌 채 스스로 그러한 야생의 목숨부치들이 떼를 이루어 살고 있음을 일러주기 위함일 것이다.

스님은 이를 지혜라 하였다. 그리고 부디 도회의 삶으로 돌아가더라도 잊지 말기를, 주위 사람들과 나누기를 당부한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쉼없이 순례객들을 걷고 또 걷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힘들여 얻은 것, 제 발걸음을 통하여 힘들여 보고 느낀 것만이, 그러한 자각 속에서 건져 올린 것만이 제대로 된 감정이고 느낌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당신은 한 마리의 자벌레처럼 강가를 걷고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비록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걷고 절망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스님은 얼마 전의 인터뷰에서 세상에 절대 안되는 일은 없다고도 하셨다. 4대강 살리기든 죽이기든 두 개의 힘이 같이 가는 것이며 당장에 막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일임에 아픔의 땅에서 함께 아플 수 있어서, 그렇게 당신을 강으로 오게 하고강에서 소리를 듣게 하고 강에서 들은 소리를 전하게 하려고 더욱 귀 기울이게 해준 인연이 고맙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픔을 치유하는 힘, 에너지가 생겨남을 느낀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스님의 모습은 많이 유해져 있었고 넉넉함이랄까 여유랄까 쉼없이 재잘거리며 자연 앞에서 자유로운 모습 그대로다. 그리하여 이틀간의 순례길은 맛난 밥과 마음맞는 이들과의 재담과 낙동강의 풍광이 어우러진 길 위의 교실이고 놀이터였다. (이틀간의 걷기 수행을 버텨준 내 부실한 허리와 옆에서 지켜봐준 지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한다)

그러니 이제 세상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도 좋겠다. 낙동강을 느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리하여 낙동강이 아름다우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밖에,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봤느냐고 물어본다면 낙동강이 제일이라고 대답할 밖에, 그러니 낙동강이 무지막지한 개발과 건설의 만행으로 파괴되고 생명줄이 끊어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지 않느냐고 물어본다면 결코 내버려 둘 수 없다고 대답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