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천성산, 을숙도 대법원 결정문에 대한 시민의 비판 / 이계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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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새만금, 천성산, 을숙도... 이들은 내게 지금 이 땅에서 인간의 언어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함으로 인해 유린당한 존재들의 상징이 되었다. 모든 논란은 법원의 판결로 종지부를 찍었고, 이제 그들은 예정된 운명 앞에 놓여 있다.

인간들은 이 일들을 이미 ‘저질러’ 버렸다. 이것은 ‘인간의 법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진리의 법정이 있다면 이 거대한 파괴에 공모한 모든 이들은 심판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그 법정에서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같은 시대 동류의 인간으로서의 ‘죄의 업연’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시민의 입장에서 이 세 사안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을 비판하려고 한다. 나는 작은 송사조차 치러보지 못한 법률에 관한 한 까막눈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이 판단에 작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민의 상식’이다. 법률가들이야 전문가로서 얕잡아보는 마음이 생기기가 쉽겠지만, 차라리 나는 ‘시민의 상식’에 비춰진 모습이 진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세 사안에 대한 대법원 결정문(을숙도 명지대교 건설건은 대법원 결정문이 없으므로 부산고법 결정문만 참조함)들을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나는 ‘법관의 판결’이란 대체 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관들의 판결에 작용하는 직관을 ‘리갈 마인드(Legal Mind)’라고 한다는데, 이 그럴싸해 보이는 표현은 실은 그저 법관 개인의 ‘감’에 불과하며, 법관의 결정문이란 자기 ‘감-여기에 작용하는 요소야 말할 필요 없이 복잡하겠지만-’으로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그것을 향해 여러 논거들을 이리저리 짜맞춘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세 사안들의 법원 결정문을 동렬에 놓고 읽다보면 우리는 그야말로 한심스럽다 싶을 정도의 수없는 논리적 모순, 일관성의 결여, 막무가내식 논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또한 법관 개인들의 리갈 마인드라고만 할 수 없는, 이 세계의 힘의 질서이자, 그런 세태에 대한 법관들의 무력한 굴종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 하나의 ‘시대 정신’의 응집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 이 세 사안에 대한 결정문에서 내가 느낀 문제점들을 하나씩 적시해보고자 한

 

2 엿장수 맘대로 - ‘원고 적격의 혼란

 

자연물인 도롱뇽 또는 그를 포함한 자연 그 자체로서는 이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 …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신청인 내원사, 미타암의 신청 중 환경권이나 자연방위권을 피보전권리로 하는 부분 및 신청인 도롱뇽의 친구들이 신청에 대하여는 피보전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신청인 내원사, 미타암은 천성산에 소재하는 전통 사찰로서 천성산을 관통하는 길이 13.5km의 원효터널이 통과하는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터널 공사 구간 중 일부 토지의 소유권을 보유하는바 (천성산)

 

천성산 판결에서는 도롱뇽은 원고가 될 수 없고, 환경보전 권리를 구할 수 있는 실체는 내원사/미타암/도롱뇽의친구들도 안 되고, 오직 내원사 미타암이 보유하고 있는 터널 통과지점 인근의 ‘토지 소유권’뿐이다. 따라서 헌법적 가치, 개발 사업에 관한 납세자인 시민들의 환경의 권리는 뒷전으로 밀린다. 그야말로 합리성의 파탄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새만금, 을숙도에서는 조금 다른 입장이다.

 

위 주민들의 환경상의 이익은 주민 개개인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보호되는 직접적 구체적이익으로서 원고 적격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의 원고를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144~3539)이 거주하는 목포시, 익산시, 전북 완주군, 전주시, 서울 등의 지역은 환경영향 평가 대상지역도 아닌데다가 ……(새만금)

 

새만금에서는 주민들의 환경보전권리를 인정하되, 전북 부안, 군산, 김제 이외 주민들은 인정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을숙도는 또 다르다.

 

… 신청인들은 부산광역시에 거주하면서 ‘부산녹색연합’ ‘습지와 새들의 친구’등 환경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시민단체에 봉사하는 사람들로서, 비록 이 사건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안의 주민들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을숙도에 자주 찾아와 (특히 신청인 박중록은 최소 일주일에 한 두차례 이상씩 을숙도를 찾아 연간 을숙도에 오는 날수가 몇 달간에 해당된다)… 신청인들은 자신들의 환경이익을 피보전권리로 하여 그 수인한도를 초과하는 침해가 있을 경우 민사상의 가처분으로도 이를 다툴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을숙도)

 

을숙도에서는 직접 거주하지 않는 시민단체와 단체 활동가의 환경보전권리까지 인정한다. 그런데, 시간상으로는 새만금은 2006년 3월16일, 천성산은 2006년 6월 2일, 을숙도 고법 판결은 2006년 6월 19일이다. 시간상으로 중간에 있는 천성산은 원고적격에서 가장 ‘박한 대접’을 받았고, 을숙도가 가장 ‘후한’ 대접을 받았다. 이것은 나름의 합리적인, 일관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앞선 판례를 존중하여 조금씩 진전되거나 후퇴하는 나름의 질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엿장수 마음대로’라고 볼 수밖에 없다.

 

3 농지와 식량 문제에 대한 서글픈 논리 다툼

 

 

만금 결정문에서 드러나는 이 사안의 핵심 쟁점은 크게 넷이다.

 

• 새만금 사업의 개발 목적인 농지 조성이 타당한 것인가,

• 새만금 담수호 수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 새만금 방조제 건설로 인한 인근 해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이 어떠할 것인가

• 이 사업의 경제성 평가는 타당한 것인가

 

그런데, 첫 번째 쟁점인 농지 조성과 이를 통한 식량 자급 문제를 두고 ‘다수 의견’ : ‘반대 의견’(박시환, 김영란 대법관) - ‘보충 의견’(이규홍, 김황식, 이강국, 김지형 대법관)은 서로 서글픈 논리다툼을 한다.

 

쌀 공급 과잉 현상으로 쌀 재배 면적을 감소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식량자급을 유지하기 위한 우량농지 확보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므로, 필요 이상의 과다한 우량농지가 전용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농지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새만금 다수 의견)

 

다수 의견을 잘 읽어보면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도 웃지 않을 수 없는 모순이 있다. 멀쩡한 농지가 아파트로, 도로로 뒤덮이는 면적이 얼마나 많으며, 농업 포기, 농촌의 피폐화로 휴경지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농지가 줄어들고 있는데, 그냥 그대로 놔둬도 아무 건설 비용도 유지 비용도 들지 않고, 생산력만으로도 수십배가 더 높다는 갯벌을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메워서 ‘우량 농지’를 확보하겠다는 이 논리가 얼마나 우스운 노릇인가. 그런데 이를 반대하는 의견도 가관이다.

 

그동안 지속적인 쌀 소비량 감소 및 생산량 증가로 인한 쌀 재고량의 과잉과 아울러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쌀 수입개방이 현실화된 시점에서 새로운 농지를 확보할 필요성이나 농지의 경제적인 가치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 농지는 다른 방법으로 보충할 수 있는 대체 방법을 강구할 수 있고 부족한 식량은 점차 자유화되어 가는 국제 무역을 통하여 조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반면, 새만금 갯벌은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나중에 복원할 길이 없는 귀중한 자원으로서 (새만금 반대 의견)

 

말하자면 이런 논리다. 농업이 죽어도 쌀은 한미 FTA 체결해서 미국에서 사다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갯벌은 한번 죽으면 다시 못살리니 갯벌을 살리자는 것이다. 당장 이런 반박이 가능하다. “농업이 죽어도 쌀은 사다 먹을 수 있듯이, 갯벌이 죽어도 갯벌에서 나오는 조개나 낙지도 수입해서 먹을 수 있다. 차라리 식량안보를 위해서 농지를 만들어야 하지 않니?”하는 식의 반박에 부딪칠 수 있는 것이다. ‘반대 의견’을 반박하는 ‘보충 의견’은 급기야 세계 곡물시장과 국제 곡물가격까지 끄집어 내게 된다.

 

반대의견은 농지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는 사정으로 쌀 재고량의 과잉과 자유무역협정에 의한 쌀 수입개방 등을 들고 있지만, 향후 세계 곡물시장 및 국제 곡물가격의 급격한 변동 등에 대비하여 일정수준의 식량 자급을 유지할 필요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상당한 정도의 우량농지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는 정책적 판단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고 (새만금 보충 의견)

 

이 3단의 논리 진행을 보고 있노라면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한미FTA로 인한 농업의 사망과 식량 수입을 걱정하는 사람들, 또한 새만금 사업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은 솔로몬 앞에서 친자 확인을 받으려고 선 두 어머니와 같은 갈등 상황에 서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편을 지지해야 하는가.

 

4. 자기 전제에 대한 부정 - 새만금 결정문 보충 의견의 자기 모순

 

새만금 결정문에서 2인의 대법관이 제출한 ‘반대 의견’에 대한 반박 및 절충으로 기능하는 4인의 ‘보충 의견’은 겉으로는 그럴듯한 외양을 띄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일종의 구색갖추기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그래서 더욱 속상한 ‘립 서비스’식의 수사들이 등장한다. 자기모순과 혼란, 산술적 절충이 횡행한다. 대표적인 것 하나만 들어보자.

 

이 사건 재판은 …… 행정처분의 무효 내지 취소 사유의 존부를 법적인 관점에서 평가, 판단하는 것이지, 새만금사업의 추진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정책적인 관점에서 평가.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하여 위 3의 라항(새만금 반대의견을 말함-인용자)의 판단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보충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말하자면 보충의견은 오직 법리만 따질 뿐이지 사업 추진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정책적 관점을 띄지 않겠다고, 중심을 잡는 듯한 포즈를 취한다. 선언은 그럴듯한데, 바로 이어서 아래와 같은 정치가들의 발언과 진배없는 정책적, 정치적 발언들이 이어진다.

 

환경이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하는 가치이기는 하지만 개발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헌법상의 가치라고 할 것이므로, 반대의견과 같이 자연환경보호의 가치가 언제나 개발에 따른 가치보다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국가 정책적인 필요에 따라 대규모의 공공사업이 시행되는 경우 필연 적으로 따르기 마련인 개발과 환경보호 사이의 가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절차와 지혜로운 판단이 요구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견지하여야 할 태도는 균형감 있는 합리적.이성적 접근방식이지, 결코 이상에 치우친 감성적인 접근 방식이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환경이 헌법적인 가치라면 개발도 헌법적인 가치다. 국가 정책은 감상에 치우치지 말고 신중하게 지혜롭게 하자. 이것은 분명 정책적인 뉘앙스의 수사들이지만, 여기까지는 판단의 전제로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 그러나 아래는 이 ‘보충 의견’에서 수차례 되풀이되는 핵심 논거인데, 이들은 결코 법리적인 판단이 아니며 그야말로 정책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이다.

 

더욱이 이 사건 새만금사업은 1991. 11. 28. 방조제공사가 착공된 이래 현재까지 약 19,000억 원의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총 33의 길이로 예정된 새만금 방조제 중 30.3의 구간이 완공되어 2.7의 구간만 남아 있고, 담수호 수위 조절 등을 위한 가력배수갑문과 신시배수갑문이 모두 완공되어 있는바, 이 사건 취소 청구는 그 사업 이 시행되기 전에 그 위법성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이미 상당한 정도로 진 행이 되어 있는 대규모의 공공사업에 대하여 사정변경 및 공익상의 필요 등을 이유로 그 사업의 전면적 중단을 요구하는 것에 그 특이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 있어 서는 사업시행 전에 사업의 타당성이나 적법성을 심리하는 경우와는 달리, 그 사업을 계속함으로 인하여 초래될 수 있는 환경상의 피해와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 못지않게 그 사업을 중단시킴으로써 달성할 수 없게 되는 국가 사회적인 편익 내지는 국민 경 제적인 가치 뿐 아니라 이미 사업을 위하여 지출된 막대한 비용에 따른 손해에 대하여도 고려하여야 하며,

 

이미 수없는 돈이 들어갔고, 방조제 공사도 거의 다 됐고, 그래서 사업을 중단했을 때 국가 사회적 편익, 국민 경제적 가치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의 밑줄 친 발언들은 100% 정책적인 판단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자신들이 법리적 판단만 하겠다고 해놓고 곧장 정치가들이나 하는 발언들을 쏟아낸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5. 김영란 대법관의 배역’ ; 새만금과 천성산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

 

김영란, 박시환 대법관이 제출한 ‘반대 의견’은 비록 2인에 불과한 소수의견이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적잖은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농업 문제에 관해서는 FTA 수용, 농업의 사망을 자명한 전제로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농업의 가치에 대한 우리 사회 일반의 의식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라서 이해할 수 있다. 여하튼 김영란 대법관은 새만금 판결에서는 박시환 대법관과 함께 ‘진실의 편’에 서서 그야말로 주옥같은 문구로 채워진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 인간은 아직 지구환경이 인간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을 아주 작은 일부밖에 알지 못하고 그 대부분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구환경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함부로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고 ……물질문명의 편리함에 깊이 빠져든 오늘날의 사람들은 물질적 필요의 충족에 우선적 가치를 두고 당장 눈에 보이고 금전으로 계산이 가능한 경제적인 이해타산과 수치 비교만으로 개발행위에 나아가고 있다.

(새만금 반대의견)

 

대법원 결정문에 위와 같은 생태론적인 입장에 터한 수사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다. 그리고, 이 ‘반대 의견’은 새만금 사업의 경제성을 평가한 민관공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보기 드문 입장을 취한다.

 

결국, 민관공동조사단의 경제성분석결과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분석결과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아니한 수질관리를 위한 추가비용이나 가액으로 평가하기 어렵거나 제대로 평가되지 아니한 새만금 갯벌 과 방조제 주변 해양환경상의 피해까지 참작하여 보면, 이 사건 새만금사업으로 얻게 되는 편익이 새만금 갯벌의 상실과 주변 해양환경상의 피해를 수인하면서까지 사업을 계속하여야 할 정도로 우월한 경제성과 사업성을 갖춘 것인지에 관하여 심각하게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할 사정이 발생하였다 할 것이고, 이는 당초 피고(농림부와 전라북도를 말함-인용자)가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인정하여 이 사건 각 처분을 한 것과 대비하여 보면 예상하지 못한 중대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새만금 반대의견)

 

새만금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하기 위해 민관공동조사단은 모든 변수들을 고려한 10개의 가상 시나리오를 설정하였고, 10개 모두에서 경제성이 있다고 결론이 났다고 한다. 이 보고서를 대법원 다수 의견은 그대로 채택하여 새만금 사업의 경제성을 판단하는 주요한 논거로 삼았다. 그런데 김영란, 박시환 대법관은 위와 같이 민관공동조사단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런데 석달 뒤, ‘반대 의견’의 일원으로서, 천성산 원효터널에 대한 대법원 결정 주심대법관이 된 김영란 대법관은 전혀 다른 입장으로 선회한다. 위에서 선언한 정도라면, 도롱뇽의 원고 적격에 대해 진전된 입장을 취하거나 보충 설명을 통해 사회적 공론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음에도 아예 못박아놓고 일언반구 설명이 없다.  그리고, 천성산 결정의 핵심 사항이었던 천성산 환경영향평가에 대해서도 기존 전문가 집단의 조사결과를 일방적으로 인정하고,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공동조사결과는 아예 배제해버리는 ‘대변신’을 감행한다.

 

그렇다면 위 신청인들의 … 환경침해에 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하여 비록 법령상의 환경영향평가절차는 아니지만 사단법인 대한지질공학회에 의뢰하여 자연변화 정밀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조사결과 및 환경부의 의뢰로 이루어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의 검토의견에 의하면 이 사건 터널 공사가 천성산의 환경에 별다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된 사정 등을 모두 종합하여 보면, (천성산 결정문)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지율 스님이 무려 다섯차례에 걸쳐 목숨을 건 단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쟁점이 바로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위 내용은 결국 지난 4년간 지율 스님의 단식과 무려 41만명에 달한 ‘도롱뇽의 친구들’의 서명과 호소, 환경영향평가 재실시에 동의한 90여명의 국회의원들의 서명, 그리고 지난 4차 단식 이후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의 실시 약속, 그리고 그 결과로 얻어낸 3개월간의 민관합동조사가 절충에 절충을 거듭하여 그나마 얻어낸 결론을 깡그리 뒤집고, 오직 2003년 대한지질공학회 보고서와 2004년 일방적으로 실시된 사흘짜리 재조사로 모든 판단을 종결지은 그야말로 ‘폭거’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천성산 대법원 결정문에서 가장 비통한 대목이다.

 

석달 전 그토록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또한 생태론적 가치를 피력하던 김영란 대법관은 석달 뒤 천성산 판결에서는 극도의 무지와 맹목으로 일관한다. 이 극명한 대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는 이 모든 것이 결국 ‘연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정은 그렇게 났지만, 진전된 입장으로 그나마 평가받았던 2인의 새만금 사업 ‘반대 의견’이 결코 진실하지 않은, 일종의 구색맞추기에 동원된 ‘배역’의 일부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법관의 양심으로 이루어진 판결이 아니라 그저 이 세계를 파괴와 맹목으로 이끄는 메커니즘의 작동으로 이루어진 기계적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

 

6. 다들 이렇게 베끼는 것인가 ; 결정문 표절

 

이것이 법원가의 관행인지는 모르지만, 결정문을 읽다가 새만금 결정문과 을숙도 결정문에서 거의 똑같은 표현을 여럿 발견했다. 무척 짜증스러웠다. 한번 비교해보자.

 

• 이 사건 재판은…… 행정처분의 무효 내지 취소 사유의 존부를 법적인 관점에서 평가 판단하는 것이지, 새만금사업의 추진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정책적인 관점에서 평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새만금 결정문)

• 이 사건 소송은 …… 법적인 관점에서 평가 판단하는 것이지, 명지대교 건설 사업 추진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정책적인 관점에서 평가 판단하는 것은 사법권의 내재적인 범위를 벗어나는 것인 점 (을숙도 결정문)

 

• 환경이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하는 가치이기는 하지만 개발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헌법상의 가치라고 할 것이므로, 반대의견과 같이 자연환경보호의 가치가 언제나 개발에 따른 가치보다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국가 정책적인 필요에 따라 대규모의 공공사업이 시행되는 경우 필연 적으로 따르기 마련인 개발과 환경보호 사이의 가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절차와 지혜로운 판단이 요구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견지하여야 할 태도는 균형감 있는 합리적.이성적 접근방식이지… (새만금 결정문)

 

• 환경이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하는 가치이기는 하지만 개발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헌법상의 가치라고 할 것이므로, 자연환경 보호의 가치가 언제나 개발에 따른 가치보다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정책적인 필요에 따라 대규모의 공공 사업이 시행되는 경우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인 개발과 환경보호 사이의 가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절차와 지혜로운 판단이 요구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견지하여야 할 태도는 균형감 있는 합리적 이성적 접근방식이라고 할 것이어서 (을숙도 결정문)

 

• 자연환경은 그 속성상 한번 파괴되면 이를 회복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은 현재 세대 의 생존의 기초가 되는 동시에 장래 세대에 대하여도 역시 생존의 기초로 유지되어야 할 자산이기 때문에 (새만금 결정문)

 

• 자연환경은 그 속성상 한번 파괴되면 이를 회복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은 현재 세대의 생존의 기초가 되는 동시에 장래 세대에 대하여도 역시 생존의 기초로 유지되어야 할 자산이다.

(을숙도 결정문)

 

이건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표절이다. 법원 결정문에는 저작권 문제가 걸리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식으로 베끼는 것이 또한 그들만의 관행인지 모르지만 참 서글프다. 작가들이나 음반 회사들끼리의 표절 분쟁을 가릴 때도 이들은 선행 판례를 보고 그럴 듯한 표현을 베낄지도 모른다. 당신들이 판관이니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이라는 요구는 당사자들에게는 참 피로한 것이겠지만, 그들이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베끼기를 자행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일반인들의 상식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7. 이른바 전문가들을 생각한다

 

새만금, 천성산, 을숙도 문제에 관해 시민들은 대개 자신의 직관으로 판단을 하게 된다. 그래서 대개 그 판단은 ‘해야 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이분법 이상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법리를 다투는 법정에서는 개발의 피해와 타당성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이 증거를 제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가 바로 ‘전문가 집단’이다. 일반인들은 결국 시민적 합의와 토론, 대중운동으로 여론을 만들어가지만, 결국 결정의 최종 심급은 전문가들이 제출하는 증거의 성질에 따라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평가방법이나 기법에 관하여 확립된 원칙이나 정설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경제성 내지사업성 평가 당시의 공공사업의 투자분석이론이나 재정학 또는 경제학 이론에 따라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하여 가능한 한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한 방법을 사용하여 편익과 비용을 분석한 후 공공사업에 경제성 내지 사업성이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새만금 결정문)

 

그러나 위 세 사안에서 이른바 ‘전문가 집단’의 노릇은 자본과 권력의 주구(走狗)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988년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은 새만금 사업과 관련하여 농지의 타당성, 사업의 경제성, 수질 개선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엉터리 연구 용역을 함으로써 10여년간 이 사업을 추진하게 했다. 그 뒤 감사원 감사로 인해 그 허구성이 지적되었지만, 이들은 결국 새만금 문제가 그간 우리 사회에서 빚었던 숱한 갈등과 반목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후 1998년 민관공동조사단이 활동했고 그들 역시 숱한 내부 논란과 엉터리 계산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새만금 사업이 경제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중계산, 누락, 과다계산 등의 숱한 오류가 지적되었고 그래서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결론은 대법원 결정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천성산 문제에서도 전문가 집단은 큰 역할을 했다. 2002년 대한지질공학회의 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의 자연변화 정밀조사(물한방울 새지 않는다는 그 유명한 보고서) 또한 대법원 결정문에까지 중요한 근거로써 살아남았다. 2004년 10월 한국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지율 스님의 청와대앞 58일 단식으로 힘겹게 얻어낸 환경영향평가를 결국 사흘짜리 재조사로 대체하고 말았고, 이는 부산고법의 2심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들 전문가 집단의 허위와 기만은 실로 범죄적 행위에 가까운 것이지만, 지금 어느 누구에게도 문제시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숱한 다른 개발 사안들에서도 비슷한 관행과 수법으로 그 행위들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전문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들이대면서.

시민들은 가치와 상식과 직관에 근거하여 이런 개발 사업들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실천한다. 그러나 이런 전문가 집단의 권능 앞에서는 결국 심한 무력감과 절망을 느낀다. 우리는 그들을 독립적인 전문가로 거듭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전문가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에 근거하여 그들 나름의 절차와 합리성만이라도 지켜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들이 사회 전반과 생태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강한 것일진대 이들을 시민적 감시와 통제하에 두면서 ‘하늘 무서운 줄 알고,후세의 평가를 두려워할 수 있게 하는’ 길은 어떻게 열릴 것인가.

 

  1. 객관적 입증이라는 게 대체 무언가.

 

새만금 사안에서 대법원이 농림부와 전라북도의 손을 들어주면서 시종일관 유지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새만금은 농지로 사용될 것이다.왜냐하면 농지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2.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 개선은 현재로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왜냐하면 수질 개선 대책을 세우고 있고, 수질이 나빠지리라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3. 새만금은 경제성이 있다. 왜냐하면 현재 반대측은 보존 가치가 개발 가치보다 높다고 입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새만금 갯벌 주변의 해양 환경은 괜찮을 것이다. 왜냐하면 반대측이 예상한 것보다 더 나빠지리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새만금 사업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부실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게 부실하다고 해서 새만금 사업 전체가 부실하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일부 부실이

사업 전체를 중단시킬 만큼 심대하다는 것을 반대측이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을숙도 문제에서 부산고법은 위 새만금 대법원 결정문의 논리를 거의 그대로 답습한다. 천성산 문제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사용한다.

1.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로 인해 습지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단측) 전문가들이 그렇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동조사에서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아마도 공동조사 결과가 그랬다면 천성산도 똑같은 논리를 답습했을 것이다)

 

결국 이런 식이다. “이미 상당히 진행했고, 돈이 들어갔고, 관성이 있기 때문에 시작한 측에게 우선권이 있다. 저지하려면 반대하는 너희들이 입증해라. 입증 책임은 너희들에게 있다. 잠재적이거나 부분적인 것으로는 안 된다. 당장 내 눈앞에서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처럼 개발 사업을 저지시키기 위해서는 실로 까다로운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 부당한 일이다. 새만금 반대 의견도 적시하고 있듯이, 이를테면 갯벌의 가치와 그것이 사라졌을 때 미칠 여파는 지금 당장 절대로 계산할 수 없고, 현재로서는 그 전모를 입증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의 숱한 오류와 막무가내로 점철된 ‘(돈)계산’은 떳떳하게 요지부동하는 증거로 인정받는다. 그들은 이미 시작된 사업이라는 상당한 관성을 등에 업고 있다. 이미 결과가 예정된 싸움이나 진배없다. 그리고 천성산의 경우처럼 민관공동조사에서 이미 기존 연구를 뒤엎는 결론이 나오면 아예 배제시켜버린다.

입증이란 대체 무엇일까. 비록 이 모든 것들이 법정에서 증거를 중심으로 다투는 일이지만, 이런 논리대로라면 결국 지금과 같은 법정에서 인간과 생명의 ‘진실’이 보호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절망적인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8. 양심과 매커니즘 ; 법관들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다.

 

나는 새만금 결정의 다수 의견에 참여한 대법관들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다.

 

당신들은 새만금 간척지가 정말 농지로 사용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새만금 담수호가 정말 제2의 시화호가 되지 않는다고 자신하고 있는가.

새만금 방조제로 인해 전북 연안의 해양생태계에 미칠 파급효과는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일까,

앞으로 몇조원이 더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정말 그 이상을 뽑아낼 경제성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

 

나는 천성산 결정에 참여한 대법관들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다.

 

정말 13.5km 터널을 뚫어도 산에 피해가 미치지 않을까,

고산습지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을까, 벌써 공사현장에 심각한 물빠짐이 확인되고 있는데, 괜찮을까.

활성단층 문제는 공단측 주장대로 공법으로 잘 해결되고, 정말 안심하고 고속전철을 탈까?

 

나는 을숙도 결정에 참여한 부산고법 판사들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다.

 

새들이 정말 앞으로도 지금처럼 을숙도를 잘 찾아올까.

습지와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을까.

당신들은 을숙도를 가로지르는 흉물같은 명지대교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가.

 

나는 이들 모두에게 묻고 싶다. 앞으로 50년, 100년뒤 이 세 공간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이 일로 생기는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왜 미래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은, 인간으로서 다른 생명들에 대한 책임은 고려 항목이 될 수 없는가? 오직 숫자로 측량가능한 요소(돈)만이 유일한 잣대가 되어야 하나. 법관의 양심으로 판결할 수 없는 매커니즘의 문제라면 이것을 수정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이 법정에서 따지는 것은 결국 ‘돈’이지만, 뭇생명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이다. 이들 생명들의 생사여탈권은 누가 당신들 법관에게 주었는가.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10. 나가는 말

 

조류독감이 전북 지역을 휩쓴다는 뉴스를 보다가, 원인균을 철새들이 제공한다고 뉴스를 듣고, 문득 소스라치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새만금 갯벌로 날아가야 할 새떼들이 벌써 진행되는 갯벌의 죽음 때문에 그곳을 찾지 못하고 전북의 다른 지역으로 머물다가 그 원인균을 옮긴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전북 지역의 조류독감 사태는 결국 우리들의 책임이 아닌가, 하는 동화같은 상상을 했다. 아마 사실이 아닐 것이고,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나는 벌써 이런 피해의식에 벌써 젖어들고 있다.

 

박중록 선생님의 안내로 두 번 정도 을숙도 구경을 한 적이 있다. 불꺼진 저녁, 캄캄한 탐조대에서 고니의 울음 소리를 들었다. 아주 낮고 가느다란 그 울음소리는 신비로웠지만, 또한 슬펐다. 을숙도 양 옆으로 환한 불빛 속에서 공단과 아파트들의 넘실거리는 도회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그 속에서 새들은 깃들어 잠들기 직전에 그렇게들 울었다. 나는 그 캄캄한 을숙도에서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