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새만금, 천성산, 을숙도 그 후 10년
이 사건 새만금사업계획을 수립할 당시에 이루어진 환경영향평가, 담수호 수질 유지․관리 대책 등에 관하여 일부 미흡한 점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점이 새만금사업의 원만한 추진에 걸림돌이 되었고 커다란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였다. 이 점은 장래 이른바 대규모의 국가 정책적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소중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새만금판결문)
피신청인은 환경권의 이념과 목적을 적절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다양한 정책도구들을 이용하여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그리고 환경이 파괴된 후에는 이를 회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거나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므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는 사후적인 치유보다는 사전적인 예방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천성산판결문)
결국 신청인들의 이 사건 신청은 그 소명이 부족하여 받아들이지 않지만, 이 사건 기록 및 심문의 전취지에 비추어 장래에 예상하지 못한 여건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한 만큼 피신청인들로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회 전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며 아울러 환경 친화적인 것인지를 꾸준히 검토⋅반영하여 신청인들이 우려하는 환경침해가 나타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을숙도판결문)
위 문구들은 2006년 대법원판결로 종결된 새만금과 천성산 을숙도 대법원 판결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들입니다. 당시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것들은 사람이 아니라 갯벌에 사는 짱둥어와 백합이었고, 늪과 계곡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이었으며 강하구에 깃드는 새들이었지만 소송의 출발점은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평범한 사실이었고 우리 마음을 움직인 것은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었고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법에 호소했던 원고들의 기대와는 달리 법은 강제성이 없는 미사여구를 곁들여 새만금 갯벌을 매립하고 천성산의 수원인 12개의 산지늪과 계곡을 관통하는 터널을 뚫고 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 을숙도를 횡단하는 대교 건설을 용인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위 세 소송의 패소로 인해 개발을 향한 법의 문이 활짝 열렸다는 사실이며, 이후 정부와 개발업자들은 거리낌 없이 강과 산과 바다로 개발의 발걸음을 옮겨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10년 동안 1000개 이상의 터널이 뚫렸고, 400여개가 넘는 골프장이 산야를 헤집고 들어왔으며 스키장과 케이블카가 산 정상부를 향해 올라가고. 백두대간은 그 원형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도로와 철도와 터널로 끊어졌으며 서남 해안선에는 평택, 새만금 구럼비 등에 대규모 미군사 기지가 들어섰고 동쪽해안선을 따라서는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 적요하고 아름다웠던 해안선을 무너트리고 말았습니다.
mb정부에서는 국토의 혈맥인 4대강에 16개의 시멘트 장벽을 세워 강길을 가로 막았고, 강 주변에는 대규모 산업단지 등 난개발사업이 속속 진행하고 있으며 강 상류에는 10개가 넘는 댐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도시, 신도시 사업으로, 기업은 건축, 재건축 사업으로 임야를 훼손하고 도시화를 부추기며 자원과 자연의 에너지를 소진하데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악순환은 지금 우리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패한 정권과 기업은 그들이 떠나면 어느 정도 정리 될 수 있지만 훼손된 자연은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이 안고가야 할 재앙으로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토와 환경의 변화에 자꾸 둔감해지고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는 전이가 깊이 진행되고 난 후에야 자각증상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의 생활방식이 자연으로 부터 멀리 떠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만일 10년 전, 새만금과 천성산과 을숙도에서 지금과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지난해 12월 10년 전 기억 속에 남아있던 일련의 현장들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기 위해 두 번에 걸쳐 현장 답사를 했습니다. 제게 새만금, 천성산, 을숙도 그 후 10년이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남아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답이 없을 수도 있고 답이 긍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질문하기를 계속하는 것은 우리는 이 현장의 산증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천성산
제가 원고 대리인으로 참여했던 천성산의 이야기를 먼저 간략하게 드리고 다음 이야기를 진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천성산 초기에는 계곡에 유량계를 설치하고 수량변화 등 모니터링을 진행했었지만 터널이 산 중앙부를 관통하고 있어 접근의 어려움이 있었고 모니터링을 주관하시던 영동아저씨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후 활동이 중지되고 말았습니다. (사진1 :유량계설치 )
그러나 터널이 산에 미치는 영향은 굳이 자를 들고 계곡의 수량을 측정할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터널이 지나간 산에서 일어난 변화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16km의 터널은 천성산 중앙부를 관통, 12개의 늪과 6개의 계곡 하류를 지나가게 된다. 더구나 공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산 동쪽 측면으로 3개의 사갱을 뚫게 됨으로 총 터널 길이는 20km가 넘었다.
그동안 단단한 암반층이었던 산은 터널 입출구부로 다량의 지하수가 빠져 나가고 고속열차가 지나갈 때 울리는 진동으로 암반의 균열이 진행되면서 산사태가 빈번해지고 적은 강우에도 힘없이 무너졌습니다. 스님들의 표현을 빌면 산은 퍼석퍼석하고 기력이 없어졌습니다.
당시 공동조사 보고서에는 최소 분당 1톤의 지하수가 터널 밖으로 빠져 나간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 1400톤 이상의 물이 매일 산의 심층부에서 빠져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 2: 터널입출구부)
내원계곡과 상리천 합수부/ 상리천 계곡은 비온 뒤 한두 시간이면 물이 맑아지는 안정된 계곡이었지만 터널이 관통한 후에는 비가 그치고 8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흙탕물이 내려오고 있다.
위와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야생화 천국이라 불렸던 아름다웠던 상리천 계곡은 황폐화가 계속되고 있지만 훼손을 막을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터널이 지나간 뒤 람사 습지인 무제치와 천성산 2봉아래 밀밭늪을 비롯한 산지늪들은 눈에 띄게 육지화가 진행되었고 작은 늪들은 사라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산내 암자에서는 겨울철에는 샘이 말라 기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사진3 : 늪의 육화 )
터널은 지하수위가 떨어지고 국토가 마르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지만 시공사들은 종이 위에 큰 산을 그려놓고 점을 하나 찍은 후, ‘이 점이 보이싶니까? 터널의 영향은 이 점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고 이야기하며 터널이 가장 친화경적이라고 주장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산이 가진 아픔이나 피해는 한 점도 되지 않겠지만 산에서 일어나는 피해는 전체 생명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고스란히 후손들의 몫으로 남겨집니다.
터널은 터널 그 자체도 문제가 되지만 고속철도의 경우 열차가 지나가는 진동으로 인하여 미세한 메커니즘으로 얽혀있는 생태계장이 무너지는 원인이 됩니다. 겨울잠을 자는 양서파충류의 개체수가 현저히 줄고 곤충들이 사라지면서 야생화들이 사라지고 나무들이 생기를 잃고 결국은 대규모 산사태가 나서 산이 완전히 건조화되어 버립니다.
(사진3 : 천성산 산사태 현황 )
제 고민은 천성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 터널이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산에 가해지는 폭력을 멈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가시화 할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내원사의 경우 사유지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문제를 제기 할 수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 할 때는 다시 천성산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환경문제를 법정 공방으로 가져갈 경우 노력은 과다하고 그 성과는 미미하며 지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더구나 환경 사안에 있어 법원은 ‘이상에 치우친 감성적인 접근’이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쓰고 있습니다.
국가 정책적인 필요에 따라 대규모의 공공사업이 시행되는 경우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인 개발과 환경보호 사이의 가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절차와 지혜로운 판단이 요구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견지하여야 할 태도는 균형감 있는 합리적․이성적 접근방식이지, 결코 이상에 치우친 감성적인 접근 방식이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새만금> |
우리가 견지하여야 할 태도는 균형감 있는 합리적·이성적 접근방식이라고 할 것이어서 명지대교 건설에 소요되는 전체 사회적인 비용과 이 사업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전체 사회적인 편익 내지는 국민 경제적인 가치를 과학적·합리적·이성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을숙도) |
우리는 자연을 생명의 순환과 잉태, 영감의 매개체, 자연 그 자체로 지키고 보호하고자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편익과 경제 가치에 기준하고 있으며 이를 과학적 합리적, 이성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영향평가 위법에 대한 법원의 판단
환경 소송의 경우 원고들은 대부분은 생태적인 시선으로 접근하기에 환경영향평가의 부실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나 법원은 ‘환경영형평가를 하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는 정도의 것이 아닌 이상… 그 부실로 인하여 당해 승인처분이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아래 문구는 새만금, 을숙도, 천성산, 4대강사업 , 영주댐 판결문에 한결같이 인용되고 있는 문구입니다.
지난번 영주댐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 문제를 말씀드렸는데 위 판결의 전제는 15년 전 용산차량기지 환경영향평가 부실에 대한 판례로 (99두9902) 구환경영향평가법 ‟(1993. 12. 12. 시행) 에 근거법률로 적용된 사례입니다.
그러나 2009년 1.1 개정된 현행 환경영향평가법은 평가서 등을 허위로 작성한 자, 다른 평가서 등을 무단으로 복사 하여 작성한 자에 대하여 형사처벌(제52조 제1항 제3호, 제4호)을, 부실하게 작성한 자에 대하여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고(제54조 제2항 제4호), 허위 또는 부실하게 평가서 등을 작성한 평가대행자에 대해 등록취소 및 업무정지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제39조 제2항 제4, 5호)
하지만 4대강 판결문과 영주댐 판결문은 환경영향평가 부실문제를 폐지된 구 환경영향평가법을 인용하여 법리를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낙동강 판결문(2012두 322) ⇓ 금강판결문(2012두 4532)
사실 제가 오늘 토론의 주제를 새만금, 천성산, 을숙도 소송을 통해 본 환경소송의 의미와 전망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법의 관문이 좁고 협소하며 절망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하는 것, 비록 법의 문이 관대하거나 평등하지 않아도 방법을 찾는 것 역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법은 불변의 율법이 아니라 세상의 순리가 움직이는 대로 개편이 되는 실정법이기에 자연을 지키기 위한 대리인으로 법정에 서는 계기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지난 3년 동안 저와 내성천의친구들은 변호사도 없이 자력으로 영주댐 중지 가처분소송을 진행했으며, 철거를 위한 본안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4대강 소송이 법리의 위법을 위주로 다투었다면 영주댐 소송은 대부분 채증 가능한 사항들을 위주로 심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즉 영주댐 하류의 하상변화. 하상변화로 인한 지하수 고갈, 지천의 붕괴, 단층대 통과와 영주댐 누수로 인한 안전 문제, 연약지질, 수질악화, 생태계파괴 등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형이며 미래형이기에 수자원공사에서 법정에 제출한 소명자료, 환경영향평가서에 기재되어 있는 평가서 자료, 법원이 판단한 법정 자료 들은 이후 내성천에서 일어나는 일과 등식이 성립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문제를 제기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재심을 통해 영주댐 문제를 원점에서 검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니터링을 계속하고 있으며 관련 법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주댐 소송은 끝날 때 까지 끝나지 않는 소송이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땅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겨난다면, 그는 이 땅을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를 느끼고 행동 할 것이며 이 땅의 역사는 지금 가고 있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