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차윤정

"금빛 모래는 인간에게는 정서적 공간일지 몰라도 수생태와 생물에게는 생존이 어려운 가혹한 환경이라는 또 다른 측면을 볼 필요가 있으며 (…) 지금의 강은 퇴적 토사 등으로 노후화되었는데, 그렇다고 지금의 강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니 우리가 다시 젊게 만들어줘야 한다." (2010년 5월 17일. 환경본부장 취임식에서)

 

2010년 12월17일 4대강 홍보부장 차윤정이 띄운 편지글 

 

http://bit.ly/2cvEnCD

강, 모래, 풍경, 그리고 지옥

지율스님, 반갑습니다. 스님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지순한 사랑에 존경을 표하는 바입니다. 스님이나 저나 생물에 대한 감수성은 닮아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저는 생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다소 냉정하거나 학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의무감을 좀 더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낙동강을 보듬으며 낙동강 사업에 대해 저항하시는 스님의 활동에 만일 학문적 책임이 없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동조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스님께서 보여주신 낙동강의 모래 풍경 사진에 대한 구체적인 실체를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스님, 지금 스님께서 붙들고 계신 낙동강의 풍경은 생태적 실체로 보기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풍경은 환경과 구분되어야 합니다. 강의 환경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강이라는 생태계의 실체를 따져야 합니다. 강의 가장 중요한 환경은 깨끗하고 풍부한 물입니다. 강에 쌓인 모래는 사람 보기에 좋은 풍경은 될 수 있겠지만 강 생물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조건이자 자원으로서의 환경으로는 부적당합니다. 우리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강의 풍경이 아니라 강의 생물들입니다.

천성산의 도룡뇽은 우리가 지켜야 했던 생명의 실체였습니다. 지금 천성산에 도룡뇽이 많다고 해서 스님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스님이 도룡뇽으로 무슨 세속의 이득을 추구했습니까. 오히려 우리 모두 다행이라, 무사히 살아남아 고맙다 여겨야 하겠지요.

저는 생태학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현장을 돌아다녔습니다. 우리가 평화롭다고 여기는 자연은 그러나 참으로 힘든 삶의 현장입니다. 각각의 생물들은 주어진 환경을 이용해서 타 생물종 혹은 이웃과 경쟁하면서 살아남아야합니다. 때로 스스로가 변화시킨 환경에 스스로 물러나야하기도 하고, 돌발적인 환경 재앙에 무참하게 파괴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내버려 두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자연 스스로 견디어 내기에 너무 힘들고 혹은 그 과정인 너무 길어 때로 조절자 혹은 조력자가 필요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가는대로 보인다고 스님은 평화로운 낙동강의 모래를 보셨겠지만, 저는 투쟁하고 고통 받는 강의 생물들을 봅니다. 우리의 강들은 오염되고 부족한 물, 그리고 바닥에 가득 찬 모래로 고통의 현장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저는 그 속의 생물들이 느꼈을 고통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이 없는 강, 물이 썩은 강은 강 생물에게 지옥입니다.

스님, 스님이 아름답다고 하는 낙동강의 모래 풍경 역시 생물들에게 절망적인 환경입니다. 물 옆에 있어도 모래밭이면 그것은 강이 아니라 육지, 더 엄격하게 말해 사막입니다. 물론 그것이 원래부터 위치하고 있던 모래자리였다면, 혹은 모래가 너무 귀해서 한번 사라지면 영구히 회복불가능한 것이라면 우리의 접근은 달라지겠지요. 그런데 사실은 흐르는 물은 늘 모래를 운반하고, 운반된 모래는 물의 힘이 약해지는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쌓인다는 점입니다. 물론 여기서 자연스럽게 쌓인다는 말에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강에서 모래가 운반되고 퇴적되는 속도는 이미 자연적인 과정을 벗어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토사의 퇴적은 어느 순간 폭우나 급류에 의해 쓸려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 양과 속도가 조절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강들은 불가피하게 수자원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상류의 댐과 하류의 둑에 의해 물 흐름의 양과 속도가 조절되고 있습니다. 물이 흐르는 구간 역시 취수를 통해 물의 양이 줄어 물이 행사하는 물리력이 약화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모래가 쌓이는 현상은 자연스런 것이지만 그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상적으로 쌓인 모래의 양이 평균 10m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물속에 살아가는 물고기를 한번 생각해보지요. 물고기는 그 무엇보다 물이 필요합니다. 모래보다 물이 더 필요합니다. 그런데 모래가 쌓여 오면서 물길이 줄어들고 설상가상 물 자체가 줄고 오염물질이 농축된다면 물고기의 공포 혹은 절망감을 이해 하실런지요. 물이 채어져야 할 수로에 모래가 채워지는 것은 물의 양이 줄어드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뜨거운 여름, 수면의 온도가 올라가면 생물들은 수심 깊은 곳으로 피신을 합니다. 피신할 물웅덩이가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설상가상 수심이 얕아 물이 증발되면서 오염물질이 농축되면 너무 잔혹한 표현이지만, 물고기의 삼투비용이 증가합니다. 겨울철에도 수심은 중요합니다. 겨울이라도 생물은 물속에 살아갑니다. 수면은 얼어도 물속은 얼지 않아야 겨울동안 물고기를 비롯한 생물들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생존에 대한 비용이 낮아야 생식에 대한 비용이 투자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자손들을 많이 생산할 수 있어야 물고기 집단의 안정성이 유지됩니다. 수많은 수생물들이 사실은 겨우 생존하는 위태로운 경계선상에 있습니다.

모래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도 있습니다. 모래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에 해당하는 생태적 과정이 진행되겠지요.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일정부분 선택을 해야 합니다. 강의 주 생태는 물속 생태계이며, 강의 주 생태계가 클수록 육지와의 경계 생태계도 크고 안정될 것입니다. 낙동강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해서 그곳의 생태가 아름답거나 생물이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그 잔혹한 아름다움을 우리는 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스님, 2010년, 강을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강의 생물들도, 강 스스로도 힘겨운 한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온전한 채로 원하는 상태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집을 짓기 위해서도 우리는 한동안 한데 잠을 자야합니다. 오래 묵은 강을 정비하는데 어찌 고통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물속의 생물들도 지금 순간, 참고 인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깊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래 역시 물이 살아나면 곧 다시 돌아옵니다. 풍경이 되살아남은 물론입니다,

날이 춥습니다. 우리 사회가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의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 방치되고 밀려난 불우한 이웃과 나아가 우리가 함께 끌어안아야하는 전 세계 고통 받는 인류에 대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걱정입니다. 겨울동안만이라도 이런 불필요한 소모를 잠시 접고 지금 당장에 필요한 일을 챙겨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추운날씨에 건강에 유념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