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재노조의 뗏목투어

posted in: 물길을 걷다 | 0

"평생 내 일터였던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참 이상했습니다."

 

낙동강 답사 안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물이 불어난 낙동강에 뗏목을 띄운 골재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물이 불어난 낙동강에 배를 띄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평생 그 강을 일터로 살아온 골재노동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강에 배를 띄우겠다고 했다. 위급함 때문이었다.

 

지난 8월 말 뗏목을 띄우기 위해서 예비답사 온 골재노동조합 임원진들을 우연히 예천 지인교 부근에서 만났다. 해거름에 자전거를 끌며 가고 있는 나를 보고 차에서 내린 것이다. 마침 삼강으로 향하는 길이어서 자전거를 싣고 삼강까지 동행했다. 그 중 한분이 삼강교 위에서"평생 강가에서 살았는데 우리의 강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습니다" 라며 마치 손으로 말을 더듬듯한 먹먹한 목소리는 아직 내 귓가에 남아있다. "평생 내 일터였던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참 이상했습니다." 졸지에 일터를 잃어버린 사람의 솔찍한 감정도 숨기지 않았다. 강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비쳐있었다.

 

오마이 뉴스 김병기 편집국장이 상주 쪽으로 내려왔다. 지난여름 휴가 때 자전거를 타고 내려왔던 일이 있기에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국장님은 4대강 문제에 현실적으로 접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뗏목을 타고 파헤쳐지는 국토의 내장 속으로 들어가보면 어떨까하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뗏목 이야기를 듣고 대구 골재노조원들의 뗏목 투어를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렸다. 기자들은 상황을 알아보시기 위해 대구로 내려갔다. .

오마이로서는 사흘 후에 계획 된 골재노조원의 출항에 함께하기는 준비나 논의 과정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이틀만에 특별 취재팀을 꾸려 낙동강으로 내려와 뗏목투어에 합류했다. 70% 이상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강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미칠 재앙이 그만큼 위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출발 멘트는 굽이쳐 휘도는 회룡포 마을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회룡포 전망대에서 시작했지만 뗏목은 안동천과 내성천. 금천이 합류하는 지점인 삼강주막 근처에서 출항했다. 때마침 폭우에 불어난 강물은 용솟음치고 있었다. 삼강에서 "흘러라 민심" " 들어아 청와대"라고 쓴 휘장을 두른 작은 뗏목을 밀어 보내는 내 눈에 그동안 낙동강에서 보아왔던 수백 수천대의 트럭과 포크레인이 업그레이드되었다. .. 뗏목은 삼강에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퇴강을 지나 경천대 건너편인 회상 모래벌에서 도착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고 행사에 함께했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점심식사 후 뗏목이 상주보를 지나는 것을 지켜보고 난 후 취재기자들과 나는 상주 환경농업학교에서 제공해주신 숙소로 먼저 돌아왔다. 취재원들은 하루 종일 강에서 보았던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각자 작업으로 돌아갔고 나는 주방 일을 거들며 저녁 식사를 거들고 있는데 전갈이 왔다. 낙동보 부근에서 뗏목이 전복되었다는 것이다. 대구 조합원들이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배를 내려놓기 위해 무리하게 뗏목을 운항하다 사고가 난 것이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그 가운데 취재원이 가지고 있던 카메라가 물에 떠내려갔다고 한다.

 

비보였다

 

오마이 뉴스 취재팀은 사고 소식을 듣고 당황했다. 뗏목을 타고 낙동강 뱃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한 취재 의도에 블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내부회의에서 논의 된 토론에서 기자님들은 차량과 도보로 낙동강하구까지 내려가자고 결론했다고 한다. 하지만 게스트를 초대하여 노래도 하고 코멘트도 하면서 쉽고 즐겁게 독자들을 유도해 강의 진실을 알리려던 - 재미있는 보도탐사의 진행계획은 많은 부분 다이어트되었다. 그 과정은 마치 비참하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의 절망"으로 보여주기 두려워했던 오마이 특집 팀에게 내린 경고 같았다.
두 번째 날 기자님들은 강 안쪽에서 밖을 바라보려고 했던 주제를 버리고 다시 강 밖에서 강을 바라보며 취재를 계속하였다. 파헤쳐진 둔치와 농지 리모델링, 취수원 이전 등 땅과 습지, 지역주민들의 삶으로 기사방향은 조금씩 수정되었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1박 했던 대둔사에서 나와 취재팀과 나는 선산 터미널에서 헤어졌다. 기자들은 도개 쪽의 취수원 이전문제와 합천, 함안지역의 침수지역 취재팀으로 나누어져 현장으로 떠나갔다.

 

지금 우리들은 강의 운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 혹자는 이제 끝난 사업이라고 하고 혹자는 지금이라도 중단 내지 재검토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이 모든게 mb의 망상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보편적인 정서는 여론 조사 결과와는 관계없이 다른 사람의 삶과 자연의 아픔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강의 아픔에 청진기를 들이대고 그 소리를 전하겠다고 한 오마이의 기획의도에 깊이 감사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비록 가문 땅에 내린 비처럼 지금은 쉽게 그 흐름이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 한 것은 이 흐름들이 마침내 더 큰물이 되기 위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화두로 질문을 시작 하지 않으면 안될 그 지점을 향해서...........